2024. 11. 1. 02:01ㆍ공포 영화 탐방기
야곱의 사다리
Jacob's Ladder
감독ㅣ에이드리언 라인
주연ㅣ팀 로빈스, 엘리자베스 페나
제작사ㅣ트라이스타 픽쳐스
상영 시간ㅣ113분
관람 등급ㅣ청소년 관람불가
공포 영화는 단순히 무서운 분위기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 미스터리도 무척 중요한 것 같다. 흥행에 대성공한 공포 영화들는 대부분 잘 짜여진 미스터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제이콥의 사다리> 역시 굉장히 풍미 있는 미스터리를 마음껏 맛볼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시원하게 해답을 던져주고 끝나는 스타일은 아니다. 보는 사람이 이것저것 짜맞춰야 할 게 많은 느낌이긴 하지만, 그 행위 자체를 즐기기 위한 퍼즐 조각은 정말로 충분하게 제공해 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 강스포주의! ※
영화 전체의 줄거리와
스포일러가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보시고 확인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지옥에서 불타는 이들은 삶을 놓지 못한 자아야. 기억이나 미련이 타버리는데, 이것은 벌이 아니라 영혼을 해방하는 행위지. 죽는 걸 두려워해서 삶을 놓지 못하면 악마가 삶을 찢어버리는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겸허히 받아들인다면, 악마는 사실 이 땅에서 우리를 해방하는 진짜 천사들이야."
우선 빠르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현실이 아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빈사 상태에 빠지면서 연옥에 갇히게 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영문도 모르고 지옥 세계가 주는 고통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다가, 마지막에 구원받게 된다. 어떻게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지금부터 영화의 진행 순서대로 하나하나 설명해 보고자 한다.
1 · 베트남 전쟁
이 영화의 주인공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제이콥 싱어'이다. 베트콩의 기습으로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한 제이콥은 살기 위해 싸우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병사의 공격으로 인해 심각한 자상을 입게 되었다. 쓰러진 채로 꼼짝도 못하는 상태로 두려움에 떨던 그는 기적적으로 구조되고, 시점은 현재로 돌아온다.
주인공이 뭐하고 사는 사람이며, 어디에서 살고,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 알아내는 것은 영화에서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닌 듯 보인다. 화면의 배경을 자세히 들여다봐도, 그런 정보를 명시하는 요소들은 엄격히 제거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관객에게 주어지는 정보가 조금은 있다. 제이콥은 군에 입대하기 전에는 철학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철학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몇 년 동안 공부했지만, 포기하고 우체부가 되었다는 언급이 나온다. 또한 같은 부대원들도 '박사'라는 별명으로 부르곤 했다. 그에겐 세 명의 아이가 있지만, 그중 막내인 '게이브'는 입대 전에 사고로 죽고 말았다. 이후 아내와 이혼한 듯 보이고, 지금은 우체국에서 만난 '제자벨'이라는 여자 친구와 함께 뉴욕의 낡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2 · 제이콥의 주변 인물들
초반부에서 관객은 제이콥의 일상을 볼 수 있다. 비중 있는 주변 인물은 제자벨 이외에도 추나 치료사인 '루이스'가 있다. 루이스는 제이콥과 매우 친하며, 그의 전처와도 아는 사이인 것 같다. 단순히 제이콥을 자기의 환자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가 위험에 처했을 때 직접 구하러 갈 만큼 그를 굉장히 아낀다.
제이콥의 일상 속에는 여자들과의 관계가 많이 나오는데, 처음 볼 때는 이 부분이 진짜 킹받았다. 왜냐하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여자가 제이콥을 좋아한다는 묘사가 나오기 때문이다.
8~90년대 영화는 남성 관객을 위한 설정이 주를 이루었고, 지금 시각으로는 진부하고 유치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다. 마치 서브컬처 작품에서나 볼 법한 설정이 메이저 영화에서도 흔했던 시대였다. 나에겐 이 부분이 그런 시대착오적인 진부함으로 다가와서, 영화를 진지하게 관람하는데 무척 방해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진상을 알게 되면 이것 또한 제이콥의 환상을 표현한 장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여자가 자기를 좋아하는 것은 제이콥의 무의식적인 욕망이 실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길거리에서 스치듯 만나거나 클럽에서 본 여자들은 가벼운 수준의 관심만 가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체국 데스크에서 만나 이성적 끌림을 느꼈던 여자, '제자벨'이 여자 친구로 나오는 것은 그의 본격적인 욕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녀보다 더 중요한 애착 대상인 전처 역시 아직도 제이콥을 잊지 못하고 사랑한다는 묘사가 나온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냥 합치면 될 일이지, 애도 둘인데 그렇게 떨어져 지낸다는 상황 자체가 이치에 안 맞는다. 그렇기에 이것은 사실이라기보단 제이콥의 바램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3 · 파티에서 본 환영
제이콥은 제자벨과 함께 파티에 가게 된다. 평소 악몽에 시달렸던 제이콥은, 파티장의 어둠 속에서 나타난 기괴한 형체를 보고 공포에 질려 쓰러지고 만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 보니 제자벨이 집으로 데려온 상태였지만, 제이콥은 열이 41도까지 치솟으면서 몸 상태가 급격하게 안 좋아진다. 제자벨은 주치의가 올 때까지 제이콥의 열을 내리기 위해 얼음을 부은 욕조에 강제로 들어가게 만든다. 이웃들까지 동원해서 억지로 얼음물에 밀어 넣어진 제이콥은 또 정신을 잃고, 갑작스레 시점이 과거로 바뀐다.
전 아내와 같은 침대에서 자고 있던 제이콥은, 아내에게 "우체국에서 만난 여자와 함께 사는 끔찍한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그러고 세상을 떠난 아들 게이브가 문밖에서 나타나, 아빠에게 자기 방으로 와달라고 보챈다. 제이콥은 게이브를 달래주지만, 게이브는 아빠에게 자기를 떠나지 말아 달라고 한다. 뭔가 찝찝한 기분에 휩싸인 체 다시 잠에 든 제이콥은, 베트남에서의 짧은 회상을 떠올리고 다시 현재 시점으로 돌아온다. 의사와 제자벨은 그의 의식이 돌아와 반가워하지만, 제이콥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눈물만 흘린다.
제자벨이라는 이름은 종교에서 비롯됐다고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를 본 후에 찾아보니, 제자벨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박해했던 바알 숭배자라고 한다. 이미 그것부터가 직접적인 암시라고 할 수 있겠다. 제자벨은 악마적인 존재이다.
이 외에도 증거는 여러 가지가 제시된다. 그녀는 제이콥을 괴롭지 않게 만들려고 그의 가족사진을 소각장에 태워버린다. 이 영화 기준으로 이것은 삶에 대한 기억이나 미련이 태워지는 형벌을 상징하는 행위이다. 또, 그녀가 클럽에서 괴물 같은 존재와 난잡한 성행위를 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것도 제자벨이 지옥의 구성원 중 하나라는 은유로 볼 수 있다. 나중에는 제이콥에게 윽박지르는 장면도 나오는데, 그 순간 그녀의 변이된 모습이 나오면서 점프스케어까지 만들어낸다!
또 제이콥이 고열에 시달리며 거의 죽을락 말락 하는 위기를 겪을 때, 얼음물에다 담가버리는 행동도 뭔가 이상하다. 열을 내리기 위한 명목이라지만, 상식적으로 제이콥의 병을 더 악화시킬 수밖에 없는 행동이다. 거기에 이웃들까지 맹목적으로 달려들어 강제로 제이콥을 20kg의 얼음이 담긴 욕조에 가둬놓는 장면은 확실히 제이콥을 괴롭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행위는 지옥의 존재들이 그가 죽음을 받아들이고 연옥에서 해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된다.
4 · 정부의 음모
계속해서 생기는 알 수 없는 현상이 이어져 제이콥의 정신은 피폐해지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라 그의 신변을 위협하는 일도 생긴다. 그가 다니던 정신과의 진료 기록이 사라져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담당 의사는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까지 듣게 된다. 제이콥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꾸민 일이라는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제이콥은 술집에서 베트남전 당시의 전우였던 폴 그루니거를 만난다. 폴 역시 공포스러운 환각 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둘은 이야기를 맞춰보며, 사령부에서 장병들에게 뭔가 부정한 일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이후 주차된 차를 타러 이동하는데, (근데 생각해 보니까 엄청 자연스럽게 음주운전하네) 폴은 차에 탔지만 제이콥은 길가의 동전을 발견하고 주우러 간다. 그런데 눈앞에서 동전이 사라지고, 그 직후 차가 폭발을 해버려 폴은 그대로 죽고 만다.
폴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베트남전 때 살아남은 전우들과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제이콥과 전우들은 서로에게 닥친 미스터리한 위협을 공유하고, 정부를 상대로 진실을 밝히기로 결의하지만, 외력에 의한 방해 공작으로 무산되고 만다. 심지어는 제이콥의 입을 막기 위해 괴한들까지 등장한다!
제이콥을 납치한 괴한은 ‘정부가 하는 일에 신경을 꺼라,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뺏길 수 있다'라며 협박한다. 제이콥은 필사적으로 저항해 그들에게서 벗어나게 된다.
여기서 등장한 괴한들도 제자벨처럼 지옥의 존재가 아닐까 싶다. 괴한들은 ‘군 시절은 지금과는 다른 삶이며, 잊어버리라’고 종용한다. 제이콥이 인생에서 풀지 못한 매듭을 계속 쥐고 있는 것도 '삶에 대한 미련'이며, 이들은 제이콥이 진실에 도달해 이 매듭을 풀고 연옥을 탈출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 계속 잡아두려고 방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전 역시 그걸 위해 일부러 배치해 둔 것 같다.
5 · 지옥같은 병원
괴한들과의 격렬한 몸싸움 끝에 중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갔지만, 안전할 줄 알았던 병원은 오히려 더 위협적인 장소로 변한다. 심상치 않은 상태의 환자들과 바닥에 널린 시체 조각들, 그리고 제이콥이 계속 봐왔던 귀신들까지 그 병원에 있었다.
의사들은 별 감정 없이 그에게 로보토미 시술을 연상케 하는 구속구를 채운다. 그러면서 보내달라고 애원하는 제이콥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죽었어요. 이제 여기가 당신의 집입니다."
그 의사들 틈엔 어째선지 제자벨이 끼어있다. 이후 눈이 없는 귀신의 모습을 한 의사가 그의 머리 한가운데에 대못 같은 주사를 박아 넣으면서 또 베트남으로 시점이 이동하게 된다.
짧은 플래시백 이후에, 멀쩡한 모습으로 병실에 입원해 있는 제이콥의 모습이 나온다. 그를 보러 두 아이와 전처가 찾아오는데, 제이콥은 전처의 모습을 보고 안심하지만 “어디 계속 꿈이나 꿔봐"라고 낮은 음성이 속삭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 부분이 조현병 증상과 매우 유사해서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얼마 안 있어 루이스가 등장하고, 그는 입원해 있는 제이콥을 강제로 빼낸다. 그러면서 그는 격분하며 병원 사람들을 비난하는데, 병원의 의료 행위가 야만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이 중세 시대야? 차라리 화형시켜서 구원하지 그래?"라는 오묘한 말을 한다. 루이스는 병원 침대 채로 제이콥을 꺼내오는데, 이상하게도 병원 사람 중 아무도 그를 말리지 못한다.
병원의 충격적인 비주얼로도 이미 충분하긴 하지만, 제자벨이 끼어있는 점에서 이 의사들 또한 지옥의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직접적으로 그가 죽었다고 언급하면서, 슬슬 관객으로 하여금 뉴욕에서 일어나는 제이콥의 일상이 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6 · 결정적 단서
다시 루이스의 추나 치료실로 돌아온 제이콥. 그는 루이스에게 지옥에 있는 것 같이 괴롭고, 죽기 싫다고 털어놓는다. 그 말을 들은 루이스는 제이콥에게 매우 중요한 대사를 날린다.
"지옥에서 불타는 이들은 삶을 놓지 못한 자아야. 기억이나 미련이 타버리는데, 이것은 벌이 아니라 영혼을 해방하는 행위지. 죽는걸 두려워해서 삶을 놓지 못하면 악마가 삶을 찢어버리는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겸허히 받아들인다면, 악마는 사실 이 땅에서 우리를 해방하는 진짜 천사들이야."
이 대사는 영화 속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말이다. 제이콥은 이 말을 들은 뒤에, 루이스의 추나 치료 덕분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게 된다.
7 · 화학자와의 만남
이후에 제이콥은 계속해서 자기를 따라다니던 남자와 직접 대면하게 된다. 남자의 이름은 ‘마이클 뉴먼’이며, 자신을 ‘화학자'라고 소개한다. 그는 원래 마약을 만드는 히피였지만, 1968년에 경찰에 발각되고 감옥에 수감된다. 그렇게 복역 중에 불쑥 군 고위 관계자가 찾아온다. 베트남전에서 특수 연구원으로 일하면, 2년 뒤에 해방 시켜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하면서 말이다. 그는 그렇게 사이공으로 향했고, 비밀리에 화학병기를 제작하게 된다. 사람의 공격성을 강제로 끌어올리는 약품을 개발했으며, 베트콩을 상대로 쓰기 위해 개발 중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점점 지체되자 군 간부들은 자국의 병사들에게도 소량 사용해 보라고 명령한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따랐고, 결국 그것 때문에 제이콥의 부대는 약물에 중독된 전투원끼리 서로 싸우다 전멸했다. 영화 내내 제이콥이 알아내고자 했던 진실이 이렇게 밝혀진 것이다. 이때, 뉴먼은 "시신들을 수습한 사람을 만났는데, 다른 시신은 당신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아요"라는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뉴먼이 이제 와서 제이콥을 찾아온 이유는, ‘책임감을 느껴서’라고 얘기한다. 그는 제이콥에게 진실을 알려줬고, 그로 인해 제이콥은 자신을 찔렀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기억해 낸다.
8 · 결말
제이콥은 뉴먼과 헤어지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제이콥의 '집'은 제자벨과 함께 살았던 더러운 아파트가 아니라, 정문 앞에서 집사가 기다리고 있는 화려한 콘도였다.
제이콥은 당연하게 그의 인사를 받으며, 익숙하게 집 안으로 들어간다.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방금까지 누가 있었던 것처럼 일상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제이콥은 가족사진을 보며 추억에 젖고, 소파에 앉아 루이스가 했던 대사를 다시 떠올린다. 그러자 집안에서 죽었던 아들이 나타나고, 그와 함께 손을 잡고 빛이 비치는 계단 위로 올라간다.
이때 갑자기 전쟁통 한가운데에 있는 간이 병실로 시점이 이동한다. 제이콥은 이곳에서 죽어있었고, 의무병들은 그의 사망을 선고한다. 그러면서 그의 얼굴이 편안해 보이며, 끝까지 열심히 싸웠다고 짧게 조의를 표하고 병실을 나가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이 결말로 관객들은 여태까지 봤던 영화의 모든 내용이 제이콥의 정신세계, 혹은 황천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제이콥이 죽기 전에 들렀던 아파트는, 여생의 미련을 모두 벗어던진 제이콥이 저승으로 가기 위해 들른 구원의 장소라고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 ‘천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평화롭게 천국에 간다는 개념도 사실은 자기 위로에 불과하고, 실제로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들은 평온한 얼굴로 죽은 제이콥의 시신을 보면서, 최소한 고통받지 않고 영면에 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게 될 뿐이다. 그런 영화의 결론은 허무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흐지부지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삶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강렬하고 근본적인 감정인지 다시금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포 게임인 사일런트 힐이 생각났다. 저승을 인간의 정신세계와 연관 지어서 표현한 점이 굉장히 비슷했고, 특히 제이콥의 육욕이 가상의 여성 캐릭터로 등장하는 점은 거의 오마주에 가까울 정도로 비슷했던 것 같다. 다만 사일런트 힐은 정말 차갑고 기괴한 분위기인데, 이 영화는 공포 영화치고는 은근히 부드럽고 따뜻한 분위기를 가진 게 많이 달랐다.
나의 해석 말고도, 이 영화는 정말 다채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트라우마와 정신병에 시달리는 사람의 정신세계를 표현했다고도 볼 수 있고, 인간 생명의 가치를 묵살하는 잔혹한 사회를 풍자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처음과 끝이 딱 맞아떨어지는, 그런 구조적으로 완벽한 부류는 아니긴 하다. 하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층적인 해석이 가능한 만큼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영화였다는 생각이 든다.